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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bah 여행기 - 3편

re:discover 2016. 12. 31. 02:56

아름다운 별빛이 드리운 밤하늘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3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는 주변 구역에 강한 불빛이 없을 것,
둘째는 하늘이 맑을 것,
셋째는 우리은하의 주요 별들이 떠오르는 자정 너머까지 기다릴 것.

뭐 첫째 두가지는 다들 알만한 사실이니 패스하고, 셋째가 중요한 이유는 별이 많이 떠오르는 타이밍은 지구와 가장 가까운 별들인 우리은하의 주요 별들이 떠오르기 시작할 때다. 보통 사수자리의 위치를 기준으로 몰려있는 성운과 성단들이 가장 멋지고 밀도도 높은 편이니 그 별들이 떠오를때까지 기다리는게 가장 좋은 편이다.

이론적인건 딱딱하고 재미없으니 대충 이쯤만 말하고, 결론은 내가 산중에 들어온 가장 큰 이유중 하나가, 멋진 별사진을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당일 5시쯤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저녁 늦게까지만 오지 않는다면, 아마도 비가 내린 후 구름은 다 떨어지고 맑은 하늘 아래에서 멋진 별을 볼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나름의 희망적인 마인드를 품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의 예측은 맞는게 거의 없고, 그 설마가 현실이 되었다. 비는 거의 자정이 되어서야 그치게 되었고, 구름은 그래도 좀 떨어졌는데, 산중이라 온도가 낮아서 그게 다 안개로 남아있을 줄은 차마 생각을 못했다. 결국 자정쯤엔 안개가 너무 많아서 별은 커녕 묯미터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그나마 비라도 조금 줄어들었으니 야밤중에 산속의 으스스한 기분이나 체험해 보자며 친구와 함께 외출을 하는 쪽으로 계획을 바꾸었다.



야밤에 안개가 드리운 어두운 산길이 어떤 느낌인지 아는가? 사일런트 힐이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다면 아마도 산중에 안개가 드리운 느낌이 얼마나 으스스한지 대충 알텐데, 그걸 불빛하나 없는 환경에서 지나간다면 어떨지 상상해보길 바란다. 너무 어두워서 사진으로는 남길 수 없었지만, 대충 아침에 안개가 살짝 빠지고 나서 어떤 느낌이였냐면 이런 느낌이였다:



이거보다 안개가 두배정도 두껍고 불빛하나 없는 한밤중에 이곳을 걷는 기분은 참으로 신비한 경험이였다. 가끔씩 지나가는 차량 한두대가 우리를 들이받지 않도록 핸드폰 불빛을 의지하며 앞뒤로 길을 밝히는 느낌이 약간은 새로웠다. 그래도 색다른 경험을 하나 하고 가니까 뭔가 기분이 조금은 나아지는 느낌이랄까?

다만 이런 체험도 잠시였고, 갑자기 맞은편에서 개가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야밤에 반짝이는 핸드폰 불빛에 자극을 받았던 것일까? 갑자기 우리를 향해 슬금슬금 다가오기 시작하는 소리가 들렸다.

"야 앞에 개가 있는가본데?"
"아... 아침에도 봤던 개들이구나."
"아니 앞에 개가 있다고!"
그때서야 상황파악이 되었다. 아침과 야밤에 저 녀석들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다를 것이라는 것을...

장담컨데, 내가 가봤던 그 어떤 고퀄리티 귀신하우스보다 더 짜릿한 기분이였다. 이러다 저 개가 덮쳐오고 내가 물려 죽으면 어떤 기분일까가 살짝 마음속을 스쳐 지나갔고, 그 뒤로 우리가 냉정하게 취한 대응은 바로 핸드폰 불빛부터 끄는 것이였다.

그 뒤로도 개들이 슬그머니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지만, 여기서 달려 도망가면 이건 백프로 녀석들에게 쫓기게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침착하게 뒤돌은 다음 조용하고 빠르게 걸었다. 개들도 우리가 딱히 해칠 의도가 없다는걸 파악했는지, 잠시 따라오다가 걸음을 멈췄다. 천만 다행이였다.

그렇게 아드레날린을 한껏 분비한 우리는 이만하면 됐지 싶어 그냥 아무말없이 숙소로 돌아와서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이 되고, 우리는 진지하게 그곳에서 하루밤을 더 지내야 한다는 것을 고민해보게 되었다. 저녁에는 또 비 예보가 되어있었고, 아침 일정인 키나발루 내셔널 파크를 다 돌면 아마도 우리는 더이상 볼 것도 할 것도 없을 것 같은 기분이였다. 그래서 난 조심스럽게 친구에게 제안을 했다.

"우리 그냥 오후쯤에 다시 시내로 돌아갈까? 숙박은 하루 손해봤다고 치고 내가 물을께..."

이 제안을 한게 너무 고맙다는 표정으로 내 친구는 그 제안을 수락했다. 녀석 말로는 내가 끝까지 하루밤 더 보내고 내려가자고 할까봐 오히려 걱정했다고. 사실 그런 상황에서 하루밤을 더 보낼 생각을 하는건 보통 고집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긴 하다.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가 참 도시생활에 익숙해진 사람들이구나를 되새기며 마지막 일정인 키나발루 내셔널 파크를 소화했다. 내셔널 파크 치고는 정말 볼께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사진은 잘나와서 조금은 얄미웠다. 이 사진만 보고 사람들이 혹하고 여기 오고 우리를 원망하면 어쩌냐는 푸념섞인 농담도 주고받았다.

뭐 올테면 오시라고 하지. 이것도 다 추억인데.


아무튼 그렇게 마지막 일정을 도시를 향한 기대와 함께 즐겁게 마무리했고, 숙소에서 짐을 싸고 나와 도시로 가는 차량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런 차가 정해진 시간에 있는게 아니고, 지나가는 차를 무작정 히치하이킹 하듯이 길거리에 서서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였다. 다행히도 약 30분정도의 기다림 끝에 어떤 여행택시 한대가 지나갔고 우리를 발견했다.

우리에게 일인당 20링깃 (6천원) 정도로 우리를 시내까지 보내준다고 했는데, 물불 가릴 여유가 없던 우리는 그정도 가격이면 엄청난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당장 차에 타게 되었다. 그 차의 진동 방지 장치가 고장났는지 멀미가 날듯 했던걸 제외하고는 그 산을 빠져나온것 자체가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차를 운전하시는 분과 조수분이 전직 가이드셔서 현지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결혼문화부터 시작해서 여러가지 식습관 등등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가이드 경험이 있던 분이라 그런지 이야기도 나름 재치있고 조리있게 잘하셨다. 말에 약간의 과장이 있는듯은 했지만 그건 뭐 모든 가이드분이 다 그렇지 싶었다. 


그렇게 우리는 숙박비 손해는 보았지만 참 길게 느껴졌던 산속에서의 이틀을 마치고 도시로 복귀했다. 이렇게 도시가 반가울수가 없었다. 불빛이 보여서, 문명이 느껴져서 행복했다.


4편에서 계속합니다. 다음이 마지막 편이 될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