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ual Talk

LAST DAY

re:discover 2017. 11. 29. 14:54

집에 들어가는 길에 근처 백화점을 들렀는데, 어느 옷가게에서 할인행사를 하고 있었다. 유독 마지막 날임을 강조하며 ‘LAST DAY’라고 붙어있는 문구가 눈에 밟힌다. 왜냐하면 저 문구가 벌써 같은 곳에 일주일 넘게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경제학에는 꽤 유명한 한 마디가 있다."당신이 100달러짜리 물건을 할인된 50달러에 샀다면, 당신은 50달러를 절약한 게 아닙니다. 50달러를 쓴 것이죠.". ‘시간은 금’이라고 했던가? 시간을 직접 돈에 비유하는 건 적절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요즘 들어 우리가 시간을 소비하는 것 또한 비슷하다는 것을 느낀다.남은 시간을 소비할 때, 자주 없는 기회를 우선시켜 시간을 투자하지만, 정작 나에게 그런 시간이 필요한지는 뒷전이 되어가고 있다. 하루하루를 돌아보면 늘 정신없는 날들이고, 그런 날들의 반복 속에서, 정작 진짜로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것들은 점점 우리의 시야에서 멀어지게 된다. 마치 세일 품목에 현혹되어 이것저것 필요 없는 것까지 사들이다 보니, 정작 생필품을 살 돈이 부족해진 듯한 기분이다.내가 최고의 효율로 삶의 가치를 충분히 만끽하고 있었다고 느꼈을 때, 50달러만큼의 가치를 절약했다고 생각했을 때, 난 더 소중한 곳에 사용할 50달러를 잃고 있었다.

우리에게 "자주 없는 기회"라는 전제가 주는 여운은 엄청나다. 평소라면 중요하지 않은 것도, 기회를 잃을 수 있다면 어째서인지 놓치고 싶지 않고, 평소라면 쓰지 않는 것도,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무리해서라도 붙잡아두고 싶은 생각이 든다. 진짜 필요한지 아닌지는 뒷전이고 만에 하나 아쉬움이 남을까 봐 더 중요한 것들을 희생한다. ‘LAST DAY’라는 문구가 나의 시선을 붙잡아두게 된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니었을까. 사실 우리가 급하게 생각하는 많은 일은, 실제로 급하지 않은 일들이 대다수이다. 가게의 ‘LAST DAY’는 일주일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가 급한 일처럼 여기던 많은 일은 당장 보기에 급할 뿐이지, 사실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닐 때가 많다. ‘우리는 소중한 일들을 포기하면서까지 지금 수중의 일들을 왜 처리해야만 할까? 우리는 시간을 제대로 소중한 일들에 제대로 투자하고 있는 것일까?’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며칠이 지나 같은 가게를 다시 지나게 되었다. ‘LAST DAY’라는 문구가 붙어있던 품목은 더이상 할인 품목이 아니다. 하지만 같은 문구는 어느새 다른 품목에 옮겨갔다. 생각보다 딱히 아쉽지는 않았다. 친구들과의 약속을 접어두고 집에 가던 중이었다. 오늘은 가족들과 통화를 하는 날이다. 친구들이 급히 조성한 만남 초대를 제치고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전화 너머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늘은 안 바쁜가 보네?”
“응.”

아무리 바빠도, 우선 비워둬야만 하는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요즘 들어 새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