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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생각의 재발견

면접, 그리고 모른다는 것. 본문

Casual Talk

면접, 그리고 모른다는 것.

re:discover 2015. 10. 20. 02:59


"...아뇨 몰라요."

"네?"


순간 나의 귀를 의심했다.


"음 그래서... 저희 회사와, 저희가 하는 일에 대해 아는게 전혀 없다는 말씀이시죠?"

"네, 갓 졸업했으니, 당연히 모르는게 많을 뿐입니다."

"그렇군요. 그럼 경력자들에 비해, 모르는 것들과, 새로운 것들이 많을테고, 이 모든것들을 따라잡기 위해서 더욱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할텐데, 그럴 준비는 충분히 되어 있으신가요?"


"회사가 신입사원을 가르칠 준비가 되어있다면 배우겠죠. 모르는 사람도 키워줘야 경력이 쌓이지 않을까요?"


순간, 이게 사람들의 일반적인 대답인가 싶어 내 머리가 멍해졌다.

이 전의 정황까지 살펴보면, "가르쳐 줘야만" 배운다는 뉘앙스로 이해한 것이, 나만의 오해는 아닐것이다.
뭐, 딱히 이런 대답이 잘못되었다는 소리는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이 업계에 흥미를 느껴서 들어오고자 한다는 사람의 대답으로써는 턱없이 가볍기만 했다.


"아니 진짜로 이쪽 일 하고싶은것 맞습니까? 흥미 느끼고, 지망하신다면서요."

라는 말이 턱 밑까지 차고 올라왔지만, 애써 삼키고 다시 차분하게 질문을 건넸다.


"그러면 혹시 지금 면접보는 이 일자리에 대해 묻고 싶은것은 없나요?"

"아니요 없습니다."


"잠깐만요, 이 일에 대해 모르신다면, 어떤 일인지 정도는 물어보는게 자연스러운것 아닌가요?"

참다못한 우리 부장님이 갑작스럽게 끼어들어 질문을 던지셨다.


약 수초간의 침묵이 이어졌고, 면접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구인광고에 저 많은 기술들을 아는 사람을 원하신다고 쓰셨는데, 그럼 대졸자는 당연히 불리한거 아닌가요? 알고 있는게 적으니 그럴수밖에 없잖아요. 그런 저를 면접에 부르셨으면 제가 모르는건 당연히 모르는게..."


부장님이 말을 잃었다.


그리고 한낯 사원인 나였지만, 난 그 침묵의 의미를 느끼고 있었다.

모르는게 잘못은 아니지만, 모르는것을 훈장삼는 그 사람의 태도는 이미 엄청난 감점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약간은 어색해진 공기 사이로 갑자기 하고싶은 말이 생각나 나도 입을 열었다.


"뭐 모를수 있습니다. 대졸이면 당연한 것이고요. 근데 제 경험상, 일을 하다보면 그 누구도 겪어본적이 없는 어려움이 다가올수도 있고, 팀원들 조차도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기술을 배워야만 하는 난관이 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는 공교롭게 그 누구도 저를 가르쳐주지 못했어요. 혼자서 헤쳐나가야만 했고, 그 어떤 훈련도, 연수도 아닌, 자신이 직접 붙들고 고민하며 배워야만 하는 일들도 있었다는 말이죠. 그런 일들을 독립적으로 배우며 나아갈 각오는 하시고 들어오는게 좋다는 생각이 들어서 미리 말씀드리고 싶었고요..."


숨을 잠시 고르고, 말을 계속했다.


"이것 저것 다 알아야 하는 직업이기에, 대졸이라서 불리하다고 말하셨는데, 오히려 이런 자리라서 더욱 이것저것 배우는것이 두렵지 않은 사람을 귀하게 여깁니다. 그런 면에서 대졸인 점은, 충분히 장점이라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새로운 일을 배우는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대졸자의 가장 큰 매력이니까요. 모든걸 배울수 있다는 느낌으로 구인광고에 있는 모든 기술 항목들을 책임지고자 하는 패기요. 액수가 정해지지 않은 복권, 혹은 공수표와도 같은 미래의 내가 가지게 될 가치일지라도, 모든걸 배워나간다고 하면 믿어지게 되는게, 대졸 무경력자가 가진 최고의 무기니까요. 그러니 자신이 불리하다고 생각하실 필요 없어요."


그리고 이 말을 끝으로, 면접자는 그저 고개를 한번 끄떡이고, 더이상의 질문은 없다고 하며 자리를 뜨게 되었고, 팀장님이 안계셔서 어찌어찌 하게된 나의 생애 첫 면접관 체험기도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너 아까 말 잘하더라?" 부장님이 약간은 장난기 섞인 말투로 말하셨다.

"음...그랬나요? 그냥 대졸시절 생각나서 해본 말인데요 뭐...크크"


"대졸 무경력자는 말이야, 아까 너 말대로 복권같은 거야, 꽝이 될수도 있고, 당첨이 될수도 있는... 배우고자 하는 자세가 복권의 성공확률을 결정하는 것이고, 배우고자 하는 자세도 없는 복권은 긁어볼 마음조차도 안들게 되는게 사람 마음인거고. 그런 의미에서 아까 저 사람은 우리 회사의 다른 일자리 면접에서도 받아줄 일이 없을것 같구나..."


그리고 생각했다.

입사 당시에 내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무려 3개월을 기다려달라고 했는데,

난 그정도를 기다려줄만한 가치가 있는 복권이였을까.


...라고 고민하던 찰나, 뒤에서 같은팀 동료분이 갑자기 대화에 끼어드신다.

"너 뽑을때는, 부장님이 이녀석은 미친듯한 자신감이 있어서 뭐든 맡겨두면 책임지고 할것 같다고 뽑자고 하더라고."

"아 정말요? 저야 자신감 원래 충만하죠. 크크"

"아니 근데 시간 지나고 보니 좀 근거없는 자신감이긴 했는데..."

"그게 뭐여요... 결국 자신감만 있고 실력 없다는거 아닌가요? 헐..."

"그럼 그냥 종합해서 중박정도로 치자. 크크"


내심 대박이라는 대답을 기대했을까, 좀 김빠지긴 했지만 칭찬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내심, 내가 새로운 것을 배우기를 멈춘게 언제부터의 일인가 생각해 보게 되었다.

분명 시작했을때는 무엇이든 배우고자 했는데, 어느새 게으름에 사로잡혀 허우적거리고 있으니...

비록 이제 신입 딱지는 떼고 있지만, 배우는 것을 멈추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신입이라서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귀한건 아닐테니까.


의욕없던 나날에 조금이라도 활기를 찾게된 소중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