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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생각의 재발견

도시의 매력은 저녁이다. 어둠 속의 반짝임, 꺼지기를 거부하는 불빛, 그리고 그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들. 그 많은 움직이는 사람들 중, 오늘 마주칠 사람은 누구일까 하는 기대감이 그 매력을 배로 더한다. 하코다테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도쿄에 도착했다. 나에게 도쿄는 친숙하면서도 낯설은 곳이다. 영화나 애니에서 얼핏 본것 같지만, 정작 직접 찾아간 적은 없었다. 대표적으로 각종 매체에서 수없이 많이 보았던 시부야의 사거리가 그러하다. 셀수 없을만큼 많은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동시에 건너는 시부야의 정체성과도 같은 장면은, 실제로 보아야 더 웅장하다. 이 수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를 보고 있자면, 옷깃만 스켜도 인연이라는 말이 새삼 더 와닿는것 같았다. 사실 도쿄에서는 크게 정해둔 일정이 없었는데, 그 이유..

홋카이도 중부지역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도쿄로 내려갈 채비를 하기 위해 하코다테를 찾았다. 하코다테는 홋카이도 최남단에 위치한 곳인데, 혼슈(일본의 메인섬)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신칸센 열차를 타야했기 때문에 이곳에서 하루정도 일정을 잡았다. 이곳은 일본 3대 야경중 하나라는 하코다테산 야경이 있는 곳인데, 그곳은 꼭 가봐야겠다는 마음을 먹은걸 제외하고는 딱히 달리 정한 행선지가 없었다. 사실 아예 정해둔 행선지가 없었던건 아닌데, 어지간한 열차가 배차간격이 30분에서 1시간이라 열차시간에 얽매이느니 느긋하게 여기저기 목적없이 돌아다녀도 좋을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코다테산에서 내려다본 야경은 예상대로 정말 멋졌다. 사람이 정말 많아서 제대로 된 사진을 찍기 어렵다는 점만 제외하면 정말 좋았다. ..

비가오던 하루 다음 날, 화창한 하루가 나를 반겨주었다. 원래대로라면 후라노 부근의 다양한 스팟들을 돌아보기로 일정이 되어있었지만, 비가 오던 어제 하루가 너무나도 아쉬워서 난 조금은 고집스럽게도 모든 일정을 포기하고 다시 비에이로 갈 마음을 먹었다. 물론 하루종일 비에이에 갔던 것은 아니고, 일단 오전에는 볼거리가 어느정도 보장된 토미타 팜에 가게 되었다. 토미타 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건 라벤더 아이스크림이다. 보기에 예뻐야 먹기도 맛있다고 하는데, 이 색감을 보면 솔직히 맛이 그냥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다를게 없다고 하더라도 맛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는 라벤더향과 멜론향이 첨가된 아이스크림이였는데, 꽃의 색감을 감상하면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니 맛이 배로 좋아진 것 같았다. 물론 멜론향이 실제로도 참 마..

여행에 가장 큰 변수를 하나 꼽으라면, 날씨를 꼽을 수 있겠다. 특히나 비가 오기라도 한다면 모든 일정이 꼬이기 시작하는데, 결국 선택지는 강행 돌파를 하던가 아니면 다른 옵션을 선택하던가 둘중에 하나가 된다. 하루종일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우산을 챙겨오지 못했던 나는 비를 맞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비가 거세지자 적당히 구조물 속으로 들어가서 비를 피했다. 성수기도 아니고 날씨도 좋지 않았던 탓에 사람이 붐비지는 않았다. 투명한 건물 안에서 비가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나에게 미치지 못하고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을 본다. 빗방울이 유리에 부서지며 문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를 낸다. 비가 조금 그치면 나가야지 싶으면서도 좀처럼 비는 그치지 않는다. 시간을 두고 기다려 보았지만..

공항에서 내려 삿포로로 향하는 급행열차를 탔다. 딱히 시간에 쫓기는건 아니지만 한시간이라도 빨리 숙소에 도착해서 수많은 짐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었다. 지도상으로는 역에서 꽤 가까워보이는 숙소를 잡은것 같은데, 짐이 무거워서 그런지 상당히 오래 걸은 것 같았다. 하긴 싼곳이 가까울 리가 없지. 9월의 삿포로 기온은 한국으로 치면 전형적인 가을날씨다. 9월이면 아직은 좀 더운 날씨를 상상하기 쉬운데, 홋카이도의 9월은 매우 쾌적하다. 기온은 약 20도가량으로 거리를 누비기 아주 적합한 시원한 날씨였다. 난 백팩 하나와 바퀴가 말썽인 배낭형 캐리어를 힙겹게 끌고 숙소로 향했다. 길을 잃을수도 있기에 가끔씩 지도를 보며 방향을 수정해준다. 조금 힘들어지자 잠깐 멈춰서 사진 몇장을 담아본다. 다시 출발하려고 하는데..

입대 1년차를 맞이했던 어느 12월 겨울. 그날, 휴가를 출발하자 마자 폭설이 쏟아졌다. 군인이 제일 싫어하는게 눈이라지만, 휴가를 출발할때 내리는 눈은 그래도 아름답다. 다시 한번 휴가를 오늘 출발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9,100원. 만원이 조금 안되는 고속버스 표를 사들고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를 기다릴 때도, 버스를 타고 나서도, 함박눈이 그칠 생각을 안한다. 오늘 여전히 부대 안에 있었으면 어떤 고생을 했을지 떠올라 잠깐 숙연해졌다가 또 피식 웃는다. 오늘은 참 좋은 날이다. 집으로 향하는 고속버스에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오늘은 참 좋은 날이다. 그렇게 좋은 날 답게 자신이 가장 하고싶었던 것을 생각해 보았다. 군인이 가장 갈망하는 자유를 선물받고 싶지만, 아직 나는 그 자유까지 한참의 ..
조금은 때이른 한해 돌아보기일지도 모르지만, 부대에서는 장문을 쓸 여건이 되지 않아서 미리 쓰기로 했다. 올해 있었던 일들을 쓰고싶기 보단, 올해의 경험을 토대로 몇가지 생각을 적고 싶다. 1. 실점해야만 하는 구간도 반드시 존재한다 올해는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마이너스였다. 하지만 질게 뻔한 경기라고 바로 포기하면 다음 경기도 똑같이 패배의식에 젖기 마련이듯, 안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그래도 잘 안됐다면 그걸로 된거다. 질게 뻔한 경기라도 끝까지 최선은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통만 느는 쓸데없는 집착처럼 보일지 몰라도, 난 그게 다음을 기약하기 위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2. 모든 문제에 다 해답이 있는건 아니다 답이 없었다. 답을 찾고자 했고 모든 노력을 쏟았지만 나오지 않았다. 답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당해 졸업여행 참여자 수가 너무 많아서 인원수에 제한을 둬야 하는데, 마땅히 방법이 없으니 졸업시험 모의고사 성적을 기준으로 인원을 추린다고 했다. 성적으로 인원을 추린다는 발상이 조금은 어이가 없었지만, 어쨌든 내 성적이 중간쯤은 간다고 생각했기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모의고사 성적이 나왔는데, 난 반에서 거꾸로 2등을 했다. 물론 졸업여행도 그렇게 나가리가 되었다. 난 평소에 부지런한 학생은 아니였다. 숙제도 자주 안해가고 그래서 선생님들이 썩 마음에 들어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때를 나름 되짚어보면 그냥 숙제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할까? 어짜피 숙제를 안해도 절반 이상은 간다는 우쭐한 마음에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수업 중 졸거나 무단 결석은 ..
어느날 부대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다 이 곡이 나왔는데, 유달리 그날 가수 이름 보다는 작곡가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그 전까지는 잘 몰랐는데, 작년 12월쯤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샤이니 종현이 작사작곡한 곡이라고 한다. 그날 처음 알게 된 사실이였는데, 그 뒤로부터는 이 곡을 대하는 태도가 사뭇 달라졌다. 처음 이 곡을 알게 된 것은 작년 중순이였다. 그때만 해도 이 곡이 힘들고 지친 사람들에게 주는 격려의 곡이라고만 생각했다. 몇번이고 들어봐도 힘든 사람의 마음을 어찌 이리도 잘 묘사해줬을까 싶어서, 힘든 마음에 위로가 되는 곡이라고 생각해서 참 많이도 들었던 것 같다. 남들 눈엔 힘 빠지는 한숨으로 보일진 몰라도 나는 알고 있죠 작은 한숨 내뱉기도 어려운 하루를 보냈단 걸 이제 다른 생각은 마요..
오랜만에 그러고 싶은 기분이라 추억팔이 한번 해보렵니다. 시간은 역순입니다. 2017년 12월 전부 다 기한이 만료된 여권들이랍니다. 10년짜리 여권을 만드는게 꿈이라며 글도 적었죠 아마? 그 글을 마지막으로 입대를 했네요. 아직 그 꿈의 종착역이 까마득하긴 해요. 사진 속 2014년부터 2017년을 책임져준 여권 6권은 아직도 내 서랍에 잘 간직되고 있답니다. 예나 지금이나 추억이 담긴 물건은 잘 못버리는 습관이 있네요. 더이상 나에겐 의미없는 물건일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2017년 11월몇년만에 첫눈을 봤어요. 장미 위에 쌓인 눈은 기적을 꿈꾸게 하더군요. 결국 저 장미도 시들고 없어졌겠지만, 결코 저 마지막 저항이 의미없지는 않았어요. 내가 오래오래 기억할껀데, 내 마음속에서 평생 살텐데, 의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