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생각의 재발견
정직함이 틀린게 아니다. 본문
사람에게는 학습능력이 있다. 좋은 경험이든, 나쁜 경험이든, 우리가 경험으로 학습한 바는, 우리의 행동을 결정한다. 잘못된 편법도 결과가 좋으면 계속 쓰게되고, 올바른 방법도 결과가 나쁘면 뭔가 망설여진다.
울며 떼쓰는 아이가 원하는 것을 얻었다고, 그 방식이 올바른 방식은 아니다. 하지만 열매는 달콤하고 사람은 간사하며, 그 열매의 맛을 잊지 못한 사람은 욕심을 다스리지 못해 다시금 그 쉬운 방식을 찾는다. 직간접적으로 타인에게 끼치는 폐해는 깨닫지 못한 채 그 방식을 남용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얻어낸 열매는 언젠가는 독이 된다. 뭐... 난 조금 소심하니 살짝 정정하겠다. 운이 나빠서 그 언젠가가 아직 살아있을 때일 경우 독이 된다. 조금 슬프지만 이게 현실이다.
반면 실패의 경험은 뼈아프다. 난 분명 부끄럼 없이 정직하게 행했다고 생각했지만, 결과가 어찌나 비참할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실패의 경험에 내 마음은 지배당한다. 내 방식이 틀렸을 것이라는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과연 그 실패의 이유가, 내가 정직해서였을까.
솔직히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우리가 정직해서 실패한게 아니라는걸. 그 정직함이 온전히 인정받기 전에, 악의적인 자들에게 먼저 발견되어 이용당하고 짓밟힌게 문제였다는 것을; 편법을 쓰는 자들에게 자리를 빼앗긴게 문제였다는 것을. 하지만 또 부정할수는 없다. 분명 덜 정직하고, 남들 다 쓰는 편법을 사용했다면, 실패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이런 좌절을 맛볼 필요도, 그 좌절에 꺾인 마음이 상처에 시달리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사람에게는 학습능력이 있다. 실패의 경험이 우리를 위축되게 만든다. 더이상 실패하고 싶지 않은 우리에게 선택이 주어진다. 다시 한번 정직하게 돌파해 볼것인지, 아니면 편법의 길로 돌아설 것인지. 처음에는 망설임 없이 정직하게 돌파한다고 하지만, 실패의 경험이 누적됐거나, 아님 그 한번의 실패가 너무 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다시 한번 더 실패할 엄두가 나지를 않는다. 그렇게 망설이는 시간은 길어져만 간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된다. 하지만 더 나쁜 경우는 끝내 욕심에게 마음을 내주고 편법의 길로 돌아서는 것이다.
최근 여러가지 일로 고민하던 중, 정말 진지하게 그냥 다 내팽개치고 내 편한대로 살아볼까, 그냥 다 쉬운 편법으로 해결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글을 적는 시점에는 그 생각이 더이상 없다. 왜냐면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애초에 결과가 중요한 이유는 내 욕심 때문이고, 편법이 편법인 이유는, 나 아닌 다른 이에게 책임과 상처를 전가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우리는 정직해서 실패한게 아니다. 정직하기 때문에 타인이 나 대신 실패하며 상처받게 두지 않고, 떳떳하게 그 실패의 책임을 직접 진 것이다.
글이 길어졌지만, 딱 한마디 하고싶었던 것은,
"정직함이 틀린게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러니 정직해서 실패했다고 좌절할 필요 없다.
단지 남들보다 욕심을 잘 절제했을 뿐이고,
책임감이 강했을 뿐이고,
그 절제력과 책임감은 분명 훗날 더 큰 일에서 찬란히 빛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