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생각의 재발견
재능론, 그리고 노력 본문
난 재능론을 믿는다. 타고나는 부분이 있고, 개인의 노력으로 어떻게 되지 않는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자면 내가 아무리 100미터를 빠르게 달리려고 노력해봐도 100미터 달리기 올림픽 금메달을 딸 수는 없을 것이고, 내가 아무리 열심히 글을 써도 해리포터같은 대작을 쓸 수는 없다. 애초에 난 체능이 늘 남들에 비해 부족했고, 작문에서도 늘 낙제점만 받던 학생이였으니까.
다만 체능이 딸리는 나라도 유일하게 잘 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멀리던지기 하나는 그래도 나름 잘 할 자신이 있다. 딱히 내 어깨 힘이 대단한게 아니라, 고등학교때 야구를 좋아했지만 공을 받아줄 사람이 없어서 일주일에 2~3번, 한번에 100개 남짓을 벽에 던져가며 연습했다. 3년정도 그랬으니까 공 한 3만개는 족히 던진 것 같다.
그래서 가끔 볼링같은 어깨 힘이 중요한 운동을 할 때, 어깨가 힘이 좋은 편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거기까지는 좋은데, 어깨 힘이 타고났다는 소리를 듣게 되면 좀 의아하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쏟은 노력이 얼만데.
예전에 어떤 학교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이런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단다. 두 그룹의 아이들에게 같은 과제를 주고, 한 그룹에게는 잘 한 학생에게 "넌 참 똑똑하구나!" 라고 칭찬하고, 다른 한 그룹에게는 "노력 참 많이 했구나!" 라고 칭찬했다. 그러자 첫 그룹 아이들에 비해, 뒷 그룹 아이들이 훨씬 더 빨리 더 어려운 문제를 풀게 되었다는, 그러니 노오력이 중요하다는, 나름 뻔하지만 꿈과 희망이 가득한 스토리다.
이게 딱히 "내 노력을 칭찬해주세요~" 라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사람에게 "타고났다"라는 말은 확실히 조심해서 써야 하는 것이 맞다. 참고로 나도 열심히 한다는 칭찬을 더 좋아한다. 타고났다는 이야기는 내 노력이 눈에 띄지 않는다고 느껴진달까.
"넌 원래 잘하잖아?"
이 한마디가 가시같이 박혔을 때,
"많이 노력했구나?"
이 한마디가 마음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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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건 잠깐 푸념좀 해본거고, 이것도 나름 의미있는 포인트이긴 하지만, 오늘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좀 다른 이야기다.
지극히 평범한 것에 담긴 노력들.
사람을 가장 좌절시키는 것 중 하나가 뭐냐면, 난 온 마음을 다하고 온 정신을 쏟아서 하고 있는데, 계란으로 바위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이다. 다른 사람들은 이리도 쉽게 하는걸 왜 난 이렇게 어렵게 할까 싶고, 난 뭔 짓을 해도 안되겠구나 싶어 절망하기도 한다. "난 이렇게 노력했는데!"라고 어필해 보지만, 사실 인정할건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결과로 판단하고, 사실 아무리 노력을 많이 담았다고 해봐야 결과가 나쁘면 아무 의미가 없다.
남들이 한번 하는걸 두번, 세번 해야만 가능해지고, 배로 노력해도 좀처럼 잘 안되는 일들이 우리 모두에게 하나쯤은 존재한다. 예를 들자면 난 낮선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거는게 가장 어렵다. 낮선 사람에게 전화 한통 하려면 옆에 메모를 적어두고 할 때도 있고, 그 한통 걸기 전에 몇십분을 고민할 때도 많다. 심지어 친한 사이라도 먼저 연락하는게 매우 어렵다. 문자 한통을 보내기위해 몇시간을 고민하다가 시기를 놓쳐 못보낼 때도 많고, 그렇게 한 두세번쯤은 실패하고 한번쯤은 보내는 답답한 패턴이 완성된다.
"그럼 그렇게 안하면 되지!"
"마음 먹기 나름이야!"
...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애초에 재능론은 좋은 쪽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당장 내가 당신에게 매일마다 자신의 생각으로 글 1000자 정도를 적는 습관이 참 쉽다고 말한다면, 미친 소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겐 그게 침묵을 깨는 문자 한통보다 쉽다. 나에게는 그런 의미로 다가온다는 뜻이다.
하지만 난 딱히 노력의 양을 내가 하지 못하는 것들의 핑계삼을 생각은 없다. 난 노력의 양이 아닌 정당한 결과로 평가받고 싶고, 아무리 재능이 없어도 세배, 네배 노력하면 얼마든지 평균은 맞출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노력만으로 최고는 될 수 없지만, 노력하면 평균은 할 수 있다. 참 비효율적인 노력일 때는 좀 슬프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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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예를 통해서 말하고자 싶었던 것이 뭐냐면, 모든 노력이 동일한 보상을 얻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선택이 가능하다면 내 재능에 맞는 노력을 하는게 최고겠지만, 가끔은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 내 재능 밖의 노력도, 심지어는 정말 소질없는 분야의 노력도 해야만 한다. 비효율적인 노력의 소비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어떤 분야에는 효율적인 소비로 성장하고, 어떤 분야에는 비효율적인 소비로 성장한다. 이걸 왜 알아야 하냐면, 나 아닌 모든 사람들도 똑같기 때문이다. 너무 한가지 각도에서만 사람을 평가하려고 하다보면, 결국 이 사람이 노력할 수 있는 마음의 크기보다는, 이 사람이 나에게 보여주는 내가 가장 중요시하는 결과만 바라보게 된다. 그 결과가 크면 좋은 것이고, 작으면 나쁜 것, 이게 일반적 판단의 기준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장점은 각각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원하는 것을 너무나도 쉽게 제공해주고,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을 더욱 좋게 판단하게 될 때가 많다. 하지만 사람이 과연 같은 여건속에서, 늘 내가 원하는 것을 계속 제공할 수가 있을까? 내가 돈이 궁했다면 돈많고 나를 위해 잘 써주는 사람이 참 고맙겠지만, 그 돈이 평생 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부분도 생각해봐야 한다. 이렇듯 너무 결과에 치중하다 보면, 정작 가장 중요한 노력의 크기를 간과하게 된다.
"노력이 밥먹여주냐?" 라고 말할수도 있겠지만, 노력만큼 효율적이든 비효율적이든 모든 분야에 통용되는 속성도 없을 것이다. 지금은 그 노력이 비효율적인 소비에 쓰일지라도, 정작 제대로 된 물을 만나면 효율적인 소비로 판도가 크게 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노력없는 자는 반대로, 자신의 물을 벗어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 물론 재벌집 금수저가 앞에 있다면 이런 이야기 해봤자 의미없는거 안다. 그 사람들은 워낙 물이 넓어서 물을 벗어날 일도 없기 때문에. 하지만 최소한 노력만큼 모든 일에 쓸모있는 속성도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누가 재능없는 노력은 무의미하다고 했는가. 노력은 습관이고, 잘 들인 습관은 모든 분야에 통용된다. 그러니 아무리 지금의 노력이 비효율적으로 보일지라도, 노력을 멈추지 말자.
그리고 한번씩은, 재능없는 분야에서, 지극히 평범한 일들을 위해 배 이상으로 노력하고 있는 자신에게, 많이 노력해서 수고했다고 칭찬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