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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생각의 재발견
카메라를 꺼내다 실수로 옆에 있는 렌즈를 떨궜다. 유리가 박살나는 소리가 들려 이건 망했구나 싶었다. 가격이 비싼건 아니지만 1980년대 렌즈라 매물도 잘 없고, 사용하는데 제약도 많아서 계륵같다고 평가받기는 하지만, 내 마음에는 쏙 들어서 늘 애착을 가지고 있었던 녀석이였다. 순간 너무 속상해서, 떨어진 렌즈를 체크하지도 않고 냉장고에 가서 찬물부터 한모금 들이켰다. 타들어가는 마음이 어찌됐든, 수습을 위해 신문지와 빗자루를 챙겼다. 잠시 마음을 고르고 체념한 뒤, 박살난 렌즈 내부를 각오하고 렌즈캡을 열었는데, 예상과 달리 씌워둔 필터 빼고는 전부 멀쩡했다. 최악을 상상했지만 의외로 결과는 별거 아니였다. 쓸데없는 고민은 내가 스스로 만든 것이였다. 때로는 뚜껑을 열어보면 간단한 일인데 너무 상상만으..
때로는 아무것도 몰랐다면, 더 편하게 지낼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에는 마냥 기뻤던 것 같고, 크면서 아는게 늘며 오히려 생각만 복잡해진 것 같다. 하지만 눈을 닫고 귀를 닫는다고, 이미 존재하는 사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애초에 우리가 무언가를 알기 꺼려하는 이유는 아는 것과 함께 따라오는 책임의 무게 때문이고, 오히려 모르는게 나을 뻔 했다고 말하는 이유는 제멋대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장의 과정은 당연하게도 책임을 키워가는 과정이며, 당장 주머니 속에 늘어나는 열쇠 수만 세어봐도 늘어가는 책임감의 무게를 실감할수 있다.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조금씩 더 조심하게 되고 행동도 번거로워 지지만, 그만큼 내가 열수 있는 ..
처음에는 내 방이 어두워, 불빛이 있는 다른 방들을 찾아 다녔다. 하지만 결국 아무리 밝은 방도 내 방은 아니였고, 평생 지낼수 있는 곳은 아니였다. 다만 내가 먼저 불빛을 키고, 내 방 부터 밝히기 시작하니, 그 곳은 내가 어둠을 피하는 장소일 뿐 아니라, 빛을 찾는 다른 자들이 잠시 쉬어갈 수도 있는 자리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위로를 받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때로는, 그 어떠한 말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도 있다. 과거에는 내 마음을 깨워줄 말들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찾지 못했다. 그럴 바에야 내가 직접 쓰자고 생각하게 되었다. 정성 들여 완성해보니, 내가 혼자 간직하기는 조금 아까웠다. 그래서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 그 끝에 내가 돌려받은 것은, 내가 원래 바라던 위로를 ..
"진정 행복한 사람이란, 인생을 살다가 뜻하지 않은 일로 빙 돌아가야 할 일이 생겼을 때, 그 우회로에 있는 풍경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오늘 어딘가에서 우연히 보게 된 글귀인데, 그 의미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적어두게 되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 글귀 또한 우회로 속에서의 만남이였고, 내가 우회로를 돌아보지 않고 이 글을 마주했다고 한들, 이 글의 뜻을 온전히 공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좋은 것들과의 만남은 우연이지만, 그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것은 그 우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뜻하지 않은 길을 걷는 중일지라도, 그로 인해 마주치는 우연으로 더 기뻐하고 그 자체를 즐길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우연은 자주 있지 않지만, 그것의 근사함을 깨닫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얼마든지..
살다 보면, 도무지 뭘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를 때가 있다. 이럴 때일수록, 잠시 멈춰서서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일까?" 를 점검해보는 시간이 중요한것 같다. 나보고 빨리 결정해야만 한다고 재촉하던 것들은, 되새겨보면 내가 진짜 원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경우가 많았다. "원하는 것을 이루어야지"로 출발했던 내 생각은, 어느새 "더 빨리, 더 멋지게, 원하는 것을 이루어야지" 가 되었고, 나아가 "더 빨리, 더 멋지게, 모두가 납득할 것을 이루어야지" 로 바뀌어 있었다. "더 빨리, 더 멋지게, 모두가 납득하도록"이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중요했다고, 어느새 내가 추구하던 것의 본질마저 왜곡하고 있었을까. 내가 상황을 어렵다고 느꼈던 이유는, 진정 원하는 것보다는 부수적인 것들을 더 의식했..
사람의 마음이란 채워진 곳은 채워진 대로, 구멍난 곳은 구멍난 대로 소중하다. 구멍난 빈 자리에 굳이 맞지 않는 것을 억지로 끼워넣을 필요는 없고, 빈 자리를 채울 것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건 아마 비어있는 그대로도 소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살다 보면 만나는 것 만큼이나 떠나보낼 것들이 많다. 떠난 것의 빈자리를 다시 무언가로 채우고 싶어지기도 하지만, 결국 빈자리는 빈자리인 그대로의 의미가 있다. 그 빈자리를 떠난 것이 다시 돌아올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다고 해도 그 빈자리가 반드시 메워져야할 곳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마음속에 빈 자리 몇군데 쯤, 더 넓은 마음을 위한 초석이라고 생각하자. 분명 언젠가는 내가 새로 만들 자리 주변을 더 넓고 아름다운 조경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일상이 지루해 그 지루함에서 자신을 꺼내줄 것들을 찾았다. 얼마 안가 깨닫게 된 것이 있다면, 난 가진 것 이상을 쏟아부으며 그 것들이 주는 두근거림을 유지하려고 했고, 나에게는 만족보다는 초조함이라는 감정이 더 앞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그토록 힘겹게 만류하고자 했던 두근거림은, 정작 내가 가장 힘들 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무색 무취하며 지루함의 극치인 줄로만 알았던 한결같던 것들은, 오히려 흔들리지 않는 휴식처가 되어 지친 나를 받아주었다. 뒤늦은 깨달음이였지만, 그래도 뒤늦었다고 느낄 때가 가장 이르다. 바라는게 있다면, 각박한 세상에 쉬어갈 곳이 조금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자신부터가 짐 보다는 휴식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대단한 것들이 요즘 세상에서는 생각보다 흔하다. 무엇만 해보고자 하면 더 좋은 것, 더 빠른 것, 더 강한 것들이 나타나 이 곳은 생각만큼 만만한 구역이 아니라며 텃세를 부린다. 그 근사함에 우리는 매료되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기는 싸움을 해보고자 하지만, 정작 마지막까지 남는 사람들은 과정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는 사람들인 것 같다. 우리는 가진 것 이상의 사람이 될 필요도 없고, 너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더 많이 가질 필요도 없다, 가진 척은 더더욱 필요 없다. 이미 주어진 것을 잃지 않고, 그 무엇보다 자신을 지키고 싶다. 그러면 언젠가는 그에 걸맞는 근사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더이상 이곳에는 자리가 없다며, 그럴듯한 이유로 마음에 벽을 치며 모든 책임과 도전을 밀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조금씩, 마음을 비우고자, 공간을 만들고자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그리 단호하게 거부하고자 했던 것은, 어느새 나의 가장 소중한 추억과 경험들을 책임지고 있었다. 그리고, 약간은 억지로 만들기 시작했던 내 마음속 공간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하지 못할 특별한 모양의 자리가 되었고, 내가 당시에 쳐두었던 벽은 자신을, 그리고 그 도전의 가치를 지나치게 과소평가 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 돌아보면 쉽지만, 그 당시에는 참 보기 어려웠었다. 또한, 지금이라도 알게되어 너무나도 감사하다.
안개가 자욱한 날, 해가 평소보다 더욱 둥글어 보였다. 분명 어느때나 나를 따뜻하게, 변함없이, 그 모습 그대로 나를 비추어주고 있었을텐데, 이상하게 평소보다 더욱 보이지 않아야 할 오늘에서야 그 본래 모습을 그대로 느끼게 되었다. 그렇듯, 우리는 항상 당연시 여기는 것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분명 많은 노력과, 타인의 도움, 그리고 많은 희생 끝에서야 얻을수 있었던 지금의 모든 것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자신의 능력 덕에 그렇게 될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쉽게 얻는 것은 쉽게 생각하고, 어렵게 얻는 것은 어렵게 생각하는 것은, 누가 가르쳐줬던 것일까. 어느 하나 당연한 것은 없다. 그저 자신의 운이 좋았을 뿐, 어느 하나 당연한 것은 없다. 지금 이순간 소중히 여기지 못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