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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생각의 재발견
돌아보면 난 이런 결정을 참 많이 했다. 당장의 행복을 위해 미래의 더 큰 행복을 버리지 말자; 당장의 즐거움을 위해 미래에 후회할 짓을 하지 말자. 그래서 늘, 현재를 조금 희생해도, 미래에 집중하는 선택이 큰 그림으로는 더 옳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미래가 보이지 않는 현재도 의미없지만, 그렇다고 현재보다 중요한 미래도 없다. 그런 결정들을 했던게 딱히 지금와서 후회되는건 아니다. 그런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다만, 없던 것들은 나중에 더 나은 것으로 채울 수 있지만, 현재의 이 상황들이, 미래에도 그대로일 경우는 거의 없다. 그리고 지금 불타오르는 마음이, 나중에도 계속 그럴 것이라는 보장은 더욱 없다. 얻고 싶은 걸 얻을 수 있는 능력이 갖춰지니, 정작 얻고..
마음을 비웠다는 것은, 포기했다는 것이 아니다. 더이상 노력이 보상을 바라지 않고, 어떤 결과가 나와도 상관 없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해야할 이유가, 하지 않을 이유보다 많기에, 결과를 막론하고 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못 할 이유 수십가지를 지워낼 수 없다 한들, 해야 할 이유 수백가지를 찾아내었고; 하고자 하는 마음이 순간이었다고 한들, 그 마음이 꺼지지 않도록 끈기를 가지고 유지했던 것이다. 하고 싶은걸 하는 능력은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끝까지 하는 건 능력이 아니라 마음이다. 길을 밝히는 붉빛은, 그 밝기가 중요한게 아니라, 꺼지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고등학교때 난 글을 쓰는걸 매우 싫어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잘 못쓰니까" 내 작문 점수는 늘 바닥을 기었고, 난 내가 이 세상에서 작문에 가장 부적합한 인간중 한명으로 태어난 줄 알았다. 물론 10년이 지난 지금, 심심하면 글 써서 올리는게 취미인 내가 그때의 생각을 돌아보면, 정말이지 사람 일은 알 수 없는 것이라는 걸 느낀다. 왜 갑자기 이 이야기를 하게 되었냐면, 가끔은 정말 나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일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하고 싶었다. 때로는 살다 보면, 절대 나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일들이 있다. 하지만 그걸 그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포기해 버리면 절대로 그 너머에 있는 것들을 볼 수가 없는 법이다. 내가 글을 쓰게 된 이유는..
"포기"와 "기대"는,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진정한 기대는, 이제는 내게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가능해 지는 것이다. 자신에게 믿는 구석이 남아있는 사람은, 진심으로 기대할 수 없다. 기대는 포기에서 시작되며, "포기"해야만, "기대"가 가능해 지는 것이다. 나로써는 더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헤쳐나갈 길이, 내 앞에 마련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는 것, 그런 마음가짐을 바로 "기대"라고 하지 않았던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내가 바라던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때; 조금은 투정부리고 실망할 수 있지만, 애초에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 "포기"라는 이름보다는, "기대"라는 이름으로, 그 앞 길의 명칭을 정해주고 싶..
예전부터 줄곧 느꼈지만, 모든 노력이 되값음을 받을 수 있는건 아니다. 모든 일이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세상에는 노력만으로 할 수 없는게 너무나도 많다. 성공은 노력 하나만에 비례하는게 아니며, 따지고보면 애초에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진짜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최선을 다해 노력을 쏟으며, 후회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 끝이 내가 바라던 결말이 아닐걸 알면서도, 만에 하나 내가 시도해보지 못한 것이 정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문제를 향해 돌진한다. 사실 모든 일들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세상은 좋은 일만 바라며 살 수 없는 곳이고, 내가 바라던 결말이 없을지라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끝이 보였다고, 그 끝이 내 마..
어디서 이런 말을 들었다. 먼 길을 가며 지치지 않는 방법이 뭐냐면, 방향은 신중하게 정하되, 걷기 시작하고 나서는, 절대로 멀리 보지 않는 것이라고. 왜냐면 멀리 보면, 내 목적지와 지금 있는곳, 그 사이에 산이 보이고, 들이 보이고, 숲이 보이고, 그 거리가 길고, 어려움이 느껴진다. 다만 막상 걸을때는, 내가 봤던 산과 들과 숲은, 사실 경치와 경사가 조금 다른 같은 지면일 뿐이다. 다만 시간이 조금 걸릴뿐. 한치 앞도 예측하지 못하는 내가, 멀리 보고 싶다는 명목으로 너무 많은 걸 개인의 능력으로 판단하고 가늠하고 있는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난 은근슬쩍 일들이 내가 예측한 시나리오 대로 흐르지 않을까, 교만하게 생각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 시나리오와 맞지 않으면, 방향을 살..
베푸는건, 물적, 마음적 여유가 있는, 그런 사람들만 하는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게 아니였다. 베푸는 사람들은 늘, 여유가 없을지언정, 자신이 여유있는 부분을 나눈다. 자신 한몸 겨누기 어려워도, 자신이 필요하다는 자리를 지키고, 힘들어 주저앉고 싶어도, 위태해 쓰러지는 자 어깨동무 하며 나아간다. 그냥 자신부터 챙기지. 바보같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싸늘한 세상 찬바람 속, 어깨동무로 나눈 따스한 체온은, 몸을 녹인다. 마음을 녹인다. 누가 누구의 도움을 받는지 모르겠다.
배우는 과정은 채우면서 시작되지만, 덜어내면서 완성된다. 처음에는 뭐든지 알고싶다. 모든게 궁금하고, 모든게 흥미롭다. 하지만 아는 것이 점점 늘어날수록, 처음엔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부분이 신경쓰인다. 그리고는 더 나은 결과를 위한 고찰이 집착으로 바뀐다. 하지만 집착하는 순간 즐거움은 사라지고, 사라진 즐거움의 원인을 엉뚱한 곳에서 찾기 시작한다. 질려버린 걸까, 스킬이 부족한 걸까, 아니면 투자할 돈이 부족한 걸까. 물론 전부 조금은 해당되겠지만, 근본적으로 즐거움이 사라진 이유는 아닐 것이다. 그럴때마다 다시 생각해볼 것은, "애초에 나는 왜 이것에 이토록 흥미를 가지게 되었을까?" 분명 내가 하고싶었던 것이 있었을 것이다. 좋아하게 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럼 그것 하나에 집중하면 되고, 다른..
잠시 잊고 지낼 때가 있다. 주는 기쁨이 받는 기쁨보다 크다는 것을, 나에게는 별거 아닌게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라는 것을. 때로는 속으로 바라고 있었나 보다. 받는 입장이 되고 싶을 때도 있다고, 사소하지만 나에게 힘이 될 무언가를 줄 수 없겠냐고. 하지만 놓친게 있었다. 주면서 이미 난 충분히 받고 있었지만, 받는 기쁨이 더 크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주는 것에 서서히 인색해지게 되었다. 어느새 주면서 얻는 기쁨들은 떠나갔고, 왜 나는 아무것도 받지 못할까 싶어졌다. 그리고 버림받은게 아닐까 싶은 울적한 생각에 빠졌다. 당연한 것이였다. 주는 기쁨은 내 마음대로 할수 있지만, 받는 기쁨은 내 마음대로 할수 없기 때문이였다. 내 마음대로 할수 없는 것에 내 마음을 맡기니, 제멋대로 기뻤다, 울적했다, ..
뭐라도 해보겠다며, 그저 뭐든지 했다. 정작 필요했던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였다. 한번씩 손을 쓸 때마다, 헛된 기대는 욕심이 되어 나를 삼켰다. 우리에게 가능한 가장 큰 믿음과 신뢰의 표현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려 주는 것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기다려 주는 것이 아닐까. "괜찮아." 고작 이 세글자가 뭐길래 이렇게 울림이 크다. 뭘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기다리라고, 기다리자고, 지금은 이 풍경을 즐기자고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때 그 풍경을 놓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라고 말할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