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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생각의 재발견
난 재능론을 믿는다. 타고나는 부분이 있고, 개인의 노력으로 어떻게 되지 않는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자면 내가 아무리 100미터를 빠르게 달리려고 노력해봐도 100미터 달리기 올림픽 금메달을 딸 수는 없을 것이고, 내가 아무리 열심히 글을 써도 해리포터같은 대작을 쓸 수는 없다. 애초에 난 체능이 늘 남들에 비해 부족했고, 작문에서도 늘 낙제점만 받던 학생이였으니까.다만 체능이 딸리는 나라도 유일하게 잘 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멀리던지기 하나는 그래도 나름 잘 할 자신이 있다. 딱히 내 어깨 힘이 대단한게 아니라, 고등학교때 야구를 좋아했지만 공을 받아줄 사람이 없어서 일주일에 2~3번, 한번에 100개 남짓을 벽에 던져가며 연습했다. 3년정도 그랬으니까 공 한 3만개는 족히 던진 것 같다.그..
대체적으로 동물의 학습체계는 "Reward System (보상 시스템)"이라는 베이스가 깔려있다. 태어날때부터 가진 일종의 생존본능 학습 매뉴얼인데,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인간이 행위를 학습하는 것은 결국 "이걸 해서 내가 기분이 좋아졌나"를 판단해서 이루어진다. 따지자면 일종의 호르몬 반응인데, 결론만 말하자면 "좋은 결과가 있을때" 분비되는 호르몬이 있고, 그 호르몬의 분비가 사람을 기분좋게 만들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행위를 반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근데 호르몬이라는게 장기적으로 같은 자극으로만 분비되기에는 인체에서 자극에 내성이 생긴다. 그 결과가 무엇이냐면 결국 우리는 그렇게 좋아했던 일임에도 시간이 지나면 자극에 익숙해져서 더이상 전처럼 즐겁지 않아지고, 그 즐거움이 컸던 만큼 배신감을 느낀다. ..
사람에게는 학습능력이 있다. 좋은 경험이든, 나쁜 경험이든, 우리가 경험으로 학습한 바는, 우리의 행동을 결정한다. 잘못된 편법도 결과가 좋으면 계속 쓰게되고, 올바른 방법도 결과가 나쁘면 뭔가 망설여진다. 울며 떼쓰는 아이가 원하는 것을 얻었다고, 그 방식이 올바른 방식은 아니다. 하지만 열매는 달콤하고 사람은 간사하며, 그 열매의 맛을 잊지 못한 사람은 욕심을 다스리지 못해 다시금 그 쉬운 방식을 찾는다. 직간접적으로 타인에게 끼치는 폐해는 깨닫지 못한 채 그 방식을 남용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얻어낸 열매는 언젠가는 독이 된다. 뭐... 난 조금 소심하니 살짝 정정하겠다. 운이 나빠서 그 언젠가가 아직 살아있을 때일 경우 독이 된다. 조금 슬프지만 이게 현실이다. 반면 실패의 경험은 뼈아..
때로는 아무것도 몰랐다면, 더 편하게 지낼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에는 마냥 기뻤던 것 같고, 크면서 아는게 늘며 오히려 생각만 복잡해진 것 같다. 하지만 눈을 닫고 귀를 닫는다고, 이미 존재하는 사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애초에 우리가 무언가를 알기 꺼려하는 이유는 아는 것과 함께 따라오는 책임의 무게 때문이고, 오히려 모르는게 나을 뻔 했다고 말하는 이유는 제멋대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장의 과정은 당연하게도 책임을 키워가는 과정이며, 당장 주머니 속에 늘어나는 열쇠 수만 세어봐도 늘어가는 책임감의 무게를 실감할수 있다.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조금씩 더 조심하게 되고 행동도 번거로워 지지만, 그만큼 내가 열수 있는 ..
처음에는 내 방이 어두워, 불빛이 있는 다른 방들을 찾아 다녔다. 하지만 결국 아무리 밝은 방도 내 방은 아니였고, 평생 지낼수 있는 곳은 아니였다. 다만 내가 먼저 불빛을 키고, 내 방 부터 밝히기 시작하니, 그 곳은 내가 어둠을 피하는 장소일 뿐 아니라, 빛을 찾는 다른 자들이 잠시 쉬어갈 수도 있는 자리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위로를 받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때로는, 그 어떠한 말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도 있다. 과거에는 내 마음을 깨워줄 말들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찾지 못했다. 그럴 바에야 내가 직접 쓰자고 생각하게 되었다. 정성 들여 완성해보니, 내가 혼자 간직하기는 조금 아까웠다. 그래서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 그 끝에 내가 돌려받은 것은, 내가 원래 바라던 위로를 ..
"진정 행복한 사람이란, 인생을 살다가 뜻하지 않은 일로 빙 돌아가야 할 일이 생겼을 때, 그 우회로에 있는 풍경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오늘 어딘가에서 우연히 보게 된 글귀인데, 그 의미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적어두게 되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 글귀 또한 우회로 속에서의 만남이였고, 내가 우회로를 돌아보지 않고 이 글을 마주했다고 한들, 이 글의 뜻을 온전히 공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좋은 것들과의 만남은 우연이지만, 그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것은 그 우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뜻하지 않은 길을 걷는 중일지라도, 그로 인해 마주치는 우연으로 더 기뻐하고 그 자체를 즐길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우연은 자주 있지 않지만, 그것의 근사함을 깨닫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얼마든지..
살다 보면, 도무지 뭘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를 때가 있다. 이럴 때일수록, 잠시 멈춰서서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일까?" 를 점검해보는 시간이 중요한것 같다. 나보고 빨리 결정해야만 한다고 재촉하던 것들은, 되새겨보면 내가 진짜 원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경우가 많았다. "원하는 것을 이루어야지"로 출발했던 내 생각은, 어느새 "더 빨리, 더 멋지게, 원하는 것을 이루어야지" 가 되었고, 나아가 "더 빨리, 더 멋지게, 모두가 납득할 것을 이루어야지" 로 바뀌어 있었다. "더 빨리, 더 멋지게, 모두가 납득하도록"이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중요했다고, 어느새 내가 추구하던 것의 본질마저 왜곡하고 있었을까. 내가 상황을 어렵다고 느꼈던 이유는, 진정 원하는 것보다는 부수적인 것들을 더 의식했..
사람의 마음이란 채워진 곳은 채워진 대로, 구멍난 곳은 구멍난 대로 소중하다. 구멍난 빈 자리에 굳이 맞지 않는 것을 억지로 끼워넣을 필요는 없고, 빈 자리를 채울 것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건 아마 비어있는 그대로도 소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살다 보면 만나는 것 만큼이나 떠나보낼 것들이 많다. 떠난 것의 빈자리를 다시 무언가로 채우고 싶어지기도 하지만, 결국 빈자리는 빈자리인 그대로의 의미가 있다. 그 빈자리를 떠난 것이 다시 돌아올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다고 해도 그 빈자리가 반드시 메워져야할 곳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마음속에 빈 자리 몇군데 쯤, 더 넓은 마음을 위한 초석이라고 생각하자. 분명 언젠가는 내가 새로 만들 자리 주변을 더 넓고 아름다운 조경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평소보다 열심히 글을 써내며 여러곳에 공유하고 있었는데, 뜻밖의 쪽지를 모르는 분에게서 받았다: "제가 이번에 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10수년을 다닌 회사지만, 쓰신 글의 영향을 받아서 저도 아직 늦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부담이 되시죠? '글때문에! 회사나가!' 는 농담이고, 그래도 마음으로 정말 큰 도움 받아서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쪽지 드립니다. 모든 일에 아직 늦지 않았다는 생각을 갖고 하루하루 알차게 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조금 더 쪽지로 이야기를 나눠보니 알게 되었는데, 그분은 대기업에 취직 중이셨다. 고작 내가 한 말이 뭐라고 대기업 10수년차가 직장을 그만두고 도전하게끔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내 자잘한 수고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놓는 계기가 될수도 있..
일상이 지루해 그 지루함에서 자신을 꺼내줄 것들을 찾았다. 얼마 안가 깨닫게 된 것이 있다면, 난 가진 것 이상을 쏟아부으며 그 것들이 주는 두근거림을 유지하려고 했고, 나에게는 만족보다는 초조함이라는 감정이 더 앞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그토록 힘겹게 만류하고자 했던 두근거림은, 정작 내가 가장 힘들 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무색 무취하며 지루함의 극치인 줄로만 알았던 한결같던 것들은, 오히려 흔들리지 않는 휴식처가 되어 지친 나를 받아주었다. 뒤늦은 깨달음이였지만, 그래도 뒤늦었다고 느낄 때가 가장 이르다. 바라는게 있다면, 각박한 세상에 쉬어갈 곳이 조금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자신부터가 짐 보다는 휴식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