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분류 전체보기 (81)
일상과 생각의 재발견
베푸는건, 물적, 마음적 여유가 있는, 그런 사람들만 하는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게 아니였다. 베푸는 사람들은 늘, 여유가 없을지언정, 자신이 여유있는 부분을 나눈다. 자신 한몸 겨누기 어려워도, 자신이 필요하다는 자리를 지키고, 힘들어 주저앉고 싶어도, 위태해 쓰러지는 자 어깨동무 하며 나아간다. 그냥 자신부터 챙기지. 바보같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싸늘한 세상 찬바람 속, 어깨동무로 나눈 따스한 체온은, 몸을 녹인다. 마음을 녹인다. 누가 누구의 도움을 받는지 모르겠다.
배우는 과정은 채우면서 시작되지만, 덜어내면서 완성된다. 처음에는 뭐든지 알고싶다. 모든게 궁금하고, 모든게 흥미롭다. 하지만 아는 것이 점점 늘어날수록, 처음엔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부분이 신경쓰인다. 그리고는 더 나은 결과를 위한 고찰이 집착으로 바뀐다. 하지만 집착하는 순간 즐거움은 사라지고, 사라진 즐거움의 원인을 엉뚱한 곳에서 찾기 시작한다. 질려버린 걸까, 스킬이 부족한 걸까, 아니면 투자할 돈이 부족한 걸까. 물론 전부 조금은 해당되겠지만, 근본적으로 즐거움이 사라진 이유는 아닐 것이다. 그럴때마다 다시 생각해볼 것은, "애초에 나는 왜 이것에 이토록 흥미를 가지게 되었을까?" 분명 내가 하고싶었던 것이 있었을 것이다. 좋아하게 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럼 그것 하나에 집중하면 되고, 다른..
잠시 잊고 지낼 때가 있다. 주는 기쁨이 받는 기쁨보다 크다는 것을, 나에게는 별거 아닌게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라는 것을. 때로는 속으로 바라고 있었나 보다. 받는 입장이 되고 싶을 때도 있다고, 사소하지만 나에게 힘이 될 무언가를 줄 수 없겠냐고. 하지만 놓친게 있었다. 주면서 이미 난 충분히 받고 있었지만, 받는 기쁨이 더 크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주는 것에 서서히 인색해지게 되었다. 어느새 주면서 얻는 기쁨들은 떠나갔고, 왜 나는 아무것도 받지 못할까 싶어졌다. 그리고 버림받은게 아닐까 싶은 울적한 생각에 빠졌다. 당연한 것이였다. 주는 기쁨은 내 마음대로 할수 있지만, 받는 기쁨은 내 마음대로 할수 없기 때문이였다. 내 마음대로 할수 없는 것에 내 마음을 맡기니, 제멋대로 기뻤다, 울적했다, ..
뭐라도 해보겠다며, 그저 뭐든지 했다. 정작 필요했던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였다. 한번씩 손을 쓸 때마다, 헛된 기대는 욕심이 되어 나를 삼켰다. 우리에게 가능한 가장 큰 믿음과 신뢰의 표현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려 주는 것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기다려 주는 것이 아닐까. "괜찮아." 고작 이 세글자가 뭐길래 이렇게 울림이 크다. 뭘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기다리라고, 기다리자고, 지금은 이 풍경을 즐기자고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때 그 풍경을 놓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라고 말할수 있었으면 좋겠다.
카메라를 꺼내다 실수로 옆에 있는 렌즈를 떨궜다. 유리가 박살나는 소리가 들려 이건 망했구나 싶었다. 가격이 비싼건 아니지만 1980년대 렌즈라 매물도 잘 없고, 사용하는데 제약도 많아서 계륵같다고 평가받기는 하지만, 내 마음에는 쏙 들어서 늘 애착을 가지고 있었던 녀석이였다. 순간 너무 속상해서, 떨어진 렌즈를 체크하지도 않고 냉장고에 가서 찬물부터 한모금 들이켰다. 타들어가는 마음이 어찌됐든, 수습을 위해 신문지와 빗자루를 챙겼다. 잠시 마음을 고르고 체념한 뒤, 박살난 렌즈 내부를 각오하고 렌즈캡을 열었는데, 예상과 달리 씌워둔 필터 빼고는 전부 멀쩡했다. 최악을 상상했지만 의외로 결과는 별거 아니였다. 쓸데없는 고민은 내가 스스로 만든 것이였다. 때로는 뚜껑을 열어보면 간단한 일인데 너무 상상만으..
좌절감은 무력함에서 비롯된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잘 되지 않을 때, 혹은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좌절감을 맛보게 된다. 그리고 이 좌절감은 실패를 직감했을 때 우리의 심정이기도 하다. 뭘 해도 안될 것 같은 암울한 상황,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목표를 그저 그만둘 수 없는 마음가짐은 도리어 좌절감을 배로 만드게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좌절감을 탈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하나 있는데, 목표를 포기하면 된다. 잘 할 필요가 없으면 노력할 필요도 없고 좌절할 필요도 없다. 어찌보면 참 간단한 일이다. 모든 좌절의 원흉은 나의 간절함이다. 물론, 내가 이런 결론을 내리려고 이런 글을 썼을 리는 없다. 우리는 무언가를 더 간절하게 원하면 원할수록 사소한 일에도 큰 좌절감에 휩싸이게 된다. 하..
고대 문명에는 통신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나라 간의 소통에서 각국의 입장을 대언하는 사신(使臣) 이라는 역할이 존재했다. 이들의 역할은 모두가 알다시피 말을 전하는 것이고, 만에 하나 나라에 찾아온 사신을 죽이기라도 한다면 사신을 보낸 나라와의 선전포고를 한다는 의미와도 같았다. (그래서 실제로 선전포고 내용을 전하러 간 사신은 목을 베이고 전쟁이 시작되곤 했다...) 하지만 전쟁이 시작된 상황에서 만큼은 암묵적인 룰이 존재했는데, 바로 서로의 사신을 죽이지 않기로 하는 것이다. 아무리 긴장감이 고조된 관계에서라도 소통의 창은 열어두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부분인데, 실제로도 대화를 포기하는 순간부터 그 전쟁은 수많은 희생을 치르는 것이 불가피 해 지게 된다. 사신을 살려두어라 가끔씩 사소한 일이 엄..
아름다운 별빛이 드리운 밤하늘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3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는 주변 구역에 강한 불빛이 없을 것, 둘째는 하늘이 맑을 것, 셋째는 우리은하의 주요 별들이 떠오르는 자정 너머까지 기다릴 것. 뭐 첫째 두가지는 다들 알만한 사실이니 패스하고, 셋째가 중요한 이유는 별이 많이 떠오르는 타이밍은 지구와 가장 가까운 별들인 우리은하의 주요 별들이 떠오르기 시작할 때다. 보통 사수자리의 위치를 기준으로 몰려있는 성운과 성단들이 가장 멋지고 밀도도 높은 편이니 그 별들이 떠오를때까지 기다리는게 가장 좋은 편이다. 이론적인건 딱딱하고 재미없으니 대충 이쯤만 말하고, 결론은 내가 산중에 들어온 가장 큰 이유중 하나가, 멋진 별사진을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당일 5시쯤부터 내리기 시작..
이번 여행에서 나에게 상당히 중요한 존재였던 녀석을 소개하고자 한다. 한국에서는 타이레놀이 대세지만,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해열진통제 하면 이녀석이 가장 일반적이다. 진통제라는 명사 대신 파나돌(Panadol) 이라는 고유명사가 오히려 더 사람들에게 친숙할 정도. 조금 더 설명을 하자면, 이녀석의 약효는 약 6시간 남짓이다. 여행동안 고열과 몸살때문에 늘 파나돌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약효가 점심 이후 6~8시간쯤인 저녁시간 쯤이면 떨어진다는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여행때 저녁을 먹고 나서 숙소에 복귀할 때 쯤이면 늘 허공을 떠다니는듯한 몸상태가 되어있었다. 그렇게 3박4일을 보낸 여행이였는데, 이 약이 없었으면 절대 불가능했을 여행이였다. 친절하게도 설명서에 약효가 6~8시간쯤이라고 나오더라. 거..
해가 가기 전에, 마음은 먹었지만 못한거 하나만 마무리 하자고 생각했는데, 이게 먼저 당첨됐다. 별건 아니고: "진지한 글만 쓰나봐?"라는 가끔 한번씩 듣는 물음에 대한 약간의 반발을 해보자고 마음먹었는데, 때마침 여행을 가게 되었던 적이 있었고, 그 여행 전부터 한번 여행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야흐로 시기는 약 두달 전의 10월 어느 날. "여행 간다고 마음만 먹지 말고 어디 한번 가봐!"라는 말에, 신경쓰는 사람들에겐 은근 귀 얇은 내가 자극을 받아, 주변 지인들에게 쓸만한 여행지를 추천받고 있었다. 홍콩? 마카오? 이런 이름만 들어도 어디인지 알만한 곳 말고, 전인미답인 그런 곳을 원한다니 회사 동료분이 몇몇 특이한 곳들을 추천해주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물망에 들어온 곳은 바닷가였다..